2013년 12월 24일
[동경노잉] 무서웠던 아카사카
시부야 나들이가 끝난 뒤 원래는 요시노야 같은 싼 규동집에 들어가
한그릇쯤 먹고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왠지 남은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고
간만에 한국음식도 먹을 겸, 집에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형부식당으로 가기위해 아카사카로 방향을 틀었다.
절대 싸인구경하러 간건 아니어라
절대 풋스마에 나왔던 곳이라
가는게 아님ㅇㅇ

ㅇㅇ..

...설마 쟈니즈에 잡혀가는건 아니겠지
조금 후미진 골목에 있긴 했지만 출구에서 나오니 2,3분이나 걸릴까 싶을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형부식당은 24시간 하는곳이라 행여나 닫았다거나 주문마감에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여느 관광객마냥 나도 왔다는 증거나 남기려고 간판사진을 한방 찍었다

사진만 봤을 뿐인데 아직도 덜덜 떨린다
간판 사진이라던가 가게 앞을 몇장 찍고 가게에 들어가기 위해 카메라를 가방에 넣으려는 찰나
왠 여자가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하니 친다.
[ なんで写真撮るの?] 왜 사진 찍는거야?
[ えっ? ] 예?
뭣때문인지 잔뜩 화가 난 여자가 나에게 갑자기 화를 내고 있었다.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아카사카는 간판을 찍으면 안되는 건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할 새도 없이, 여자는 나에게 몰아붙였다
[ 너 말야 대체 왜 사진을 찍는거야 엉? ]
[ 그게 무슨.. 죄송하지만, ]
[ 대답안해? 엉? 너 뭔대 우리사진을 찍냐고!! 어?]
내 말은 듣지도 않은채 길길히 날뛰는 여자.
간판에만 신경을 쓰느라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앞에 서있던 여자는 자신들의 사진을 찍는줄 알고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는다며 화가 난 모양이었다.
당신을 찍은게 아니에요, 앞에 있는줄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원하신다면 사진은 지우도록 할게요
온갖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금방이라도 때릴기세로 화를 내는 여자에게
그만 겁을 먹어,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카메라를 꺼내 여자에게 보여줬다.
나는 단지 간판을 찍은것 뿐이에요. 봐요 당신은 보이지도 않아요 화풀어요
마음속으로만 수없이 외치며 여자에게 뷰파인더를 들이밀었다.
사진을 보면 오해가 풀리고 그냥 제 갈길을 가지 않을까 하는 바램으로.
하지만 그런 내 바람이 무색하게 여자의 얼굴에는 짜증만 더 짙어질 뿐이었다.
[ 그러니까, 왜 사진을 찍었냐고! 말 못해? 일본어 몰라? ]
낭패다. 애초에 이 여자는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거다.
아니, 그저 이런 상황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내가 병신인게 잘못이다.
그냥 난 밥이나 먹으러 온것 뿐인데.
시간도 늦고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이게 대체 무슨 봉변인가 싶어 서러웠다.
갑자기 온갖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울컥 하고 눈물이 쏟아지려는 찰나,
물끄러미 날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보다못해 여자를 만류했다.
[ 우리 사진 찍은거 아닌것 같아, 그냥 가자 ]
[ 넌 가만 있어봐! 야, 말 안할거야? 무슨짓이냐고! ]
[ 자 가자가자 ]
남자가 여자의 손을 붙잡고 거의 질질 끌고 가다시피 데려가고 나서야 상황은 정리되었다.
나는 그들 일행이 사라지고 나서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자리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온갖 감정이 교차했다. 말이라던가 문장으로 다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형부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숯불제육볶음, 공기밥을 시켰다
생맥주를 시켜 단숨에 절반쯤을 마시니 그제서야 진정이 되며 가게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애초에 앉고싶었던 싸인이 있던 자리는 다른 커플이 앉아있어, 그 맞은편 테이블에 자리했다.
줌을 땡겨서 찍어볼까 했지만, 방금전의 일이 생각나 그만두고 말았다.
가게 내부는 생각했던것보다 작았지만, 그래도 아늑했고
원래 벽지는 찾아볼수 없을만큼 수많은 일본 유명 연예인및 한국 연예인들의 싸인들로 가득했다.
내가 앉은 자리만 해도 왼쪽 위 오른쪽 해서
보아 동방신기 빅뱅 JYJ 신화등 온갖 한류스타들의 사진과 싸인으로 화려했다.
워낙 많아 일일히 다 찍다간 밥조차 못먹을 정도로.

요새는 지각 안하시죠?ㅎㅎ
워낙 고급요리집이 많은 동네라 그런지는 몰라도,
한국에선 그냥 평범한 제육볶음이라던가 삼겹살, 찌개일 뿐인데도
그 먼 우크라이나 한식당보다도 거의 1.5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제육볶음, 공기밥, 생맥주를 시키니 거의 2700엔에 달하는 금액.
그나마 위안이 되는것이 있다면 제육볶음이 정말 꿀맛이었다는 것과,
김치를 마음껏 먹을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보다 족히 대여섯살은 어림직한 친구가 가져다준 음식을 맛있게 비웠다.
약간 한산했던 가게 분위기와는 달리,
내가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쉴새없이 배달주문전화가 밀려와 카운터는 정신없이 바빠보였다.
거리가 멀어 안될것 같긴 했지만, 혹시나 싶어 계산하며 배달이 되는가를 물어봤지만
역시나 내가 사는곳까진 배달이 안된다고 했다.
알았다 대답하고 잘먹었다 인사를 한뒤 가게를 빠져나왔다.
잘 먹었다는 인사는 의례 어디서나 말이지만,
정말 진심으로 잘먹었다는 인사를 할 수 있을정도로 만족스러운 가게였다.
비싸서 누가 사주기 전에는 못갈것 같긴 하지만.

늦은 시간인데도 굉장히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짧게 겪은 일들을 모공에 이야기했었는데,
알고보니 아카사카가 원래 무서운 동네라고들 하는 반응이었다.
한국식 크라브가 유명하다던가, 아가씨들 물이 다르다던가,
연예인들이나 국회의원들이 현지처를 만드는 동네라는 이야기 등..
그래서 오해를 살 수 있었다는 친절한 설명도 들으니 그런 여자의 반응이 조금 이해가 되는것도 같았다.
여튼 이래저래 또하나의 소중한 경험을 갖게 해준 아카사카 나들이었다.
━━━━━━━━━━━━━━━━━━━━━━━━━━━━━━━━━━━━━━━━━━━━━━━━━━━━━━━
# by | 2013/12/24 16:47 | 東京老剩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어깨펴고 사세요~